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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 전 그룹회장 김우중 회장이 별세하셨습니다.
김우중 회장은 숙환으로 입원치료를 받고있었는데 어젯밤 별세하셨습니다.
병원에 입원하여 치료를 받아왔는데요
그러던중 지난 토요일부터 상태가 급격하게 악화되었습니다.
고인의 평소 뜻에 따라 연명치료는 받지않았고
장례식 역시 간소하게 가족장을 치르기로 하였습니다.
장례식장은 아주대병원 장례식장이며 현재까지도 조문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고 전해집니다
김우중 회장은 한때 세계경영을 선언하며
그룹을 확장,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기업인으로 자리매김 하였습니다.
그리고 김우중 회장은 그룹해체 이후 동남아 국가에서 청년사업가 양성에 힘써왔던 것으로 알려져있고, 대우세계경영위원회 장병주 회장은 고인이 각별하게 신경써온 해외청년사업가 사업을 잘 이어가겠다고 전했습니다.
조문행렬에 많은 기업인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는데요.
김태구 전 회장은
" 그분 만한 위대한 기업인, 애국인은 흔치 않다.
고인이 생전에 희생을 강조했는데 대우인들은
흔쾌히 받아들였고 우리의 다음세대들이 잘 살 수 있도록 하자는 큰 뜻을 품었다. "
라고 전하였습니다.
김용호 한국GM 사외이사는
" 우리나라 주요 산업 발전에 커다란 족적을 남기고, 아직도 활발하게 살아움직이는 여러 사업체를 일군 공이 있다.
' 세계는 넓고 할일은 많다 ' 라는 캐치프레이즈로
젊은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전했다. "
라고 전하였습니다.
배순훈 전 대우전자 회장도
" 우리나라 경제발전에 동력을 제공한 분 "
이경훈 대우 전 회장은
" 회장님과 35년 대우에서 함께 생활했다.
한 세기에 한번 나올까 말까 한 훌륭한 분 "
이라고 전했습니다.
" 고인의 작은아들과 친구였다.
고인에 대한 예를 갖추기 위해 왔습니다. "
황각규 롯데지주 부회장은
" 고인이 베트남과 우즈베키스탄에서 일궈놓은
네트워크로 해외진출시 많은 도움을 받았다. "
프론티어 정신을 이어가겠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다른 목소리도 있었습니다.
그의 경영방식에는 외환위기를 초래한 우리나라 재벌체제의 모순이 그대로 농축돼 있었다는 비판이 여전하다. 정경 유착을 통한 방만한 차입경영, 대마불사를 앞세운 문어발실 사업 확장, 이로 인한 천문학적 부채로 사상누각을 쌓았다는 지적이다. 결국 41조원 규모의 회계부정을 저지르고 그룹이 무너지면서 우리 경제는 엄청난 후유증에 시달렸다.
대우가 남긴 부채 60여조원은 금융기관의 부실을 불렀고 기업들의 연쇄도산으로 이어졌다. 국민 혈세인 30조원의 공적자금까지 투입됐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대우직원들은 일자리를 잃고 고통을 당했고, 대우에 투자했던 소액주주들은 주식이 휴지 조각으로 변하는 모습을 무기력하게 지켜봐야만 했다.
1980년대만 해도 김 전 회장은 '샐러리맨의 우상'으로 통했다. 1967년 서울 충무로에 있는 10평 남짓한 사무실에서 5명의 직원, 자본금 500만원으로 대우실업을 세우면서 '대우신화'는 시작됐다. 셔츠와 내의류를 동남아에 수출하던 대우실업은 1970년대 조선·자동차 등 중공업 분야로 사업영역을 넓혔다. 한국기계공업, 옥포조선, 새한자동차 등 부실기업을 인수·합병해 덩치를 키웠다.
1990년대 들어서는 '세계경영'을 발판으로 창업 30여년 만에 재계 2위 그룹으로 도약했다. 1999년 해체 직전 대우그룹은 자산 83조원, 매출 62조원에 국내 계열사 41개와 국외법인 396개를 거느렸다. 대마불사의 신화가 작동하던 당시 경제상황에서 대우그룹의 몰락은 쉽게 상상하기 어려웠다.
외환위기에 대한 대우책임론이 커지고, 검찰 수사 가능성이 커지자 김우중 전 회장은 해외로 도피했습니다.
도피 6년여 만인 2005년 한국에 돌아온 김 전 회장은 분식회계를 주도한 혐의로 2006년 징역 8년 6개월과 벌금 1000만원, 추징금 17조 9253억원을 선고 받았다. 당시 김 전 회장에 대한 법원의 평가는 판결문에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습니다. 재판부는 김 전 회장에게 중형을 선고하면서 경제발전에 기여한 공보다 회계부정 등 불법 경영으로 국민에게 큰 피해를 안긴 과를 더 크게 봤습니다.
하지만 생전 김 전 회장은 대우그룹의 해체에 대해 당시 경제 관료들의 판단 오류 때문이었다며 여러 번 억울함을 토로했다.
현재까지도 추징금 17조원에 대해
많은 논쟁이 있습니다.
김우중 회장은 숙환으로 입원치료를 받고있었는데 어젯밤 별세하셨습니다.
고인은 지난해 말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으며
병원에 입원하여 치료를 받아왔는데요
그러던중 지난 토요일부터 상태가 급격하게 악화되었습니다.
고인의 평소 뜻에 따라 연명치료는 받지않았고
장례식 역시 간소하게 가족장을 치르기로 하였습니다.
장례식장은 아주대병원 장례식장이며 현재까지도 조문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고 전해집니다
김우중 회장은 한때 세계경영을 선언하며
그룹을 확장,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기업인으로 자리매김 하였습니다.
그리고 김우중 회장은 그룹해체 이후 동남아 국가에서 청년사업가 양성에 힘써왔던 것으로 알려져있고, 대우세계경영위원회 장병주 회장은 고인이 각별하게 신경써온 해외청년사업가 사업을 잘 이어가겠다고 전했습니다.
조문행렬에 많은 기업인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는데요.
김태구 전 회장은
" 그분 만한 위대한 기업인, 애국인은 흔치 않다.
고인이 생전에 희생을 강조했는데 대우인들은
흔쾌히 받아들였고 우리의 다음세대들이 잘 살 수 있도록 하자는 큰 뜻을 품었다. "
라고 전하였습니다.
김용호 한국GM 사외이사는
" 우리나라 주요 산업 발전에 커다란 족적을 남기고, 아직도 활발하게 살아움직이는 여러 사업체를 일군 공이 있다.
' 세계는 넓고 할일은 많다 ' 라는 캐치프레이즈로
젊은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전했다. "
라고 전하였습니다.
배순훈 전 대우전자 회장도
" 우리나라 경제발전에 동력을 제공한 분 "
이경훈 대우 전 회장은
" 회장님과 35년 대우에서 함께 생활했다.
한 세기에 한번 나올까 말까 한 훌륭한 분 "
이라고 전했습니다.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은
" 고인의 작은아들과 친구였다.
고인에 대한 예를 갖추기 위해 왔습니다. "
황각규 롯데지주 부회장은
" 고인이 베트남과 우즈베키스탄에서 일궈놓은
네트워크로 해외진출시 많은 도움을 받았다. "
프론티어 정신을 이어가겠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다른 목소리도 있었습니다.
그의 경영방식에는 외환위기를 초래한 우리나라 재벌체제의 모순이 그대로 농축돼 있었다는 비판이 여전하다. 정경 유착을 통한 방만한 차입경영, 대마불사를 앞세운 문어발실 사업 확장, 이로 인한 천문학적 부채로 사상누각을 쌓았다는 지적이다. 결국 41조원 규모의 회계부정을 저지르고 그룹이 무너지면서 우리 경제는 엄청난 후유증에 시달렸다.
대우가 남긴 부채 60여조원은 금융기관의 부실을 불렀고 기업들의 연쇄도산으로 이어졌다. 국민 혈세인 30조원의 공적자금까지 투입됐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대우직원들은 일자리를 잃고 고통을 당했고, 대우에 투자했던 소액주주들은 주식이 휴지 조각으로 변하는 모습을 무기력하게 지켜봐야만 했다.
1980년대만 해도 김 전 회장은 '샐러리맨의 우상'으로 통했다. 1967년 서울 충무로에 있는 10평 남짓한 사무실에서 5명의 직원, 자본금 500만원으로 대우실업을 세우면서 '대우신화'는 시작됐다. 셔츠와 내의류를 동남아에 수출하던 대우실업은 1970년대 조선·자동차 등 중공업 분야로 사업영역을 넓혔다. 한국기계공업, 옥포조선, 새한자동차 등 부실기업을 인수·합병해 덩치를 키웠다.
1990년대 들어서는 '세계경영'을 발판으로 창업 30여년 만에 재계 2위 그룹으로 도약했다. 1999년 해체 직전 대우그룹은 자산 83조원, 매출 62조원에 국내 계열사 41개와 국외법인 396개를 거느렸다. 대마불사의 신화가 작동하던 당시 경제상황에서 대우그룹의 몰락은 쉽게 상상하기 어려웠다.
외환위기에 대한 대우책임론이 커지고, 검찰 수사 가능성이 커지자 김우중 전 회장은 해외로 도피했습니다.
도피 6년여 만인 2005년 한국에 돌아온 김 전 회장은 분식회계를 주도한 혐의로 2006년 징역 8년 6개월과 벌금 1000만원, 추징금 17조 9253억원을 선고 받았다. 당시 김 전 회장에 대한 법원의 평가는 판결문에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습니다. 재판부는 김 전 회장에게 중형을 선고하면서 경제발전에 기여한 공보다 회계부정 등 불법 경영으로 국민에게 큰 피해를 안긴 과를 더 크게 봤습니다.
당시 재판부는 김 전 회장이 외환위기 이후에도 고통스런 체질개선 대신 방만한 기존의 경영방식을 그대로 유지한 점, 분식회계로 금융권으로부터 사기 대출을 받아 피해자를 양산한 점, 대우그룹 도산으로 천문학적인 규모의 공적자금이 투입된 점, 해외금융조직을 통해 거액의 자금을 해외로 도피시킨 점 등을 거론했다.
하지만 생전 김 전 회장은 대우그룹의 해체에 대해 당시 경제 관료들의 판단 오류 때문이었다며 여러 번 억울함을 토로했다.
현재까지도 추징금 17조원에 대해
많은 논쟁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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